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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지식]경제의 중심 한강의기적 대한민국 수출의 역사

Economy인포

by 빅윌 2024. 1. 3.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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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 강국, 빠른 경제성장을 이뤄낸 한강의 기적

대한민국은 전세계에서 유일무이 견줄 나라가 없을정도로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룩하였습니다. 역사적으로 대한민국의 고대부터 근대까지 무역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근현대에는 폐쇠적인 경제 정책과, 일제강점으로 인한 국권침탈과, 물자의 수탈, 동종상잔의 비극인1905년 부터 1953년까지 3년여간의 6.25 전쟁으로 인한  나라 전체가 폐허가 되는 아픔을 겪어 대한민국은 세계 어느나라보다도 경제적으로 처참히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현대에는 시내 곳곳을 돌아다녀보면 해외 브랜드의 의류와 신발, 화장품들, 각종 생필품까지 우리 삶의 곳곳에 사용이 되고 있고, 이와 마찬가지로 해외 여러나라에서도 , 대한민국 브랜드의 휴대폰과 전자제품 , 화장품 , 더나아가 우리나라 전통의 난방방식인 온돌, 뉴욕 타임스퀘어의 휘황찬란한 광고까지 대한민국의 제품이 사용되는 것을 쉽게 찾아 볼수 있습니다.

이렇듯 다 양한 제품들이 다양한 국가에서 수입되어 우리나라로 유입되는 과정 및 또한 해외에서도 우리나라 제품을 찾아보는 과정에서 무역이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빠른 경제성장을 이룩하는 원동력이 되어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습니다.

이러한 빠른 경제 성장이 이뤄지는데에는 어떠한 과정이 있었는지 역사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대한민국 수출역사의 시작( 1880년~1910년 )

1876년 강화도 조약, 즉  '조일 수호 조규'의 체결을 통해 대한민국의 수출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조약을 통해 항구의 개방이 이뤄지게 되면서 폐쇄적인 경제체제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자유무역의 개념을 받아들이게되었습니다.

 

세계의 좋은 제품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되고 또 우리나라의 좋은 농산물의 수출이 시작 되었습니다.

 

1880년대 초에는 일본으로부터 쌀과 콩 등의 곡물을 수출을 하며 무역을 시작하게되었습니다.

특히 1887년에는 쌀과 콩이 전체 수출의 52.9%를 차지했으며, 1890년대에는 미국으로의 곡물 수출이 급격히 증가하게되어 쌀과 콩이 총 수출의 85.7%까지 성장하게 되었고, 이 품목은 1910년까지 60~70%를 유지하며 곡물 수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수있습니다..

1880년대 초에는 중국이나 일본 상인을 통해 영국산 면제품이 수입되었지만, 1880년대 말에는 일본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각 지역에서 생산된 면제품이 주로 수입되었습니다.

그러나 1880년대의 관세정책은 우리나라에 불리하게 작용했습니다. 임오군란 이후 1882년에 수입 관세율이 5%로 책정되어 최혜국대우를 통해 다른 국가와의 조약에서도 동일한 세율이 적용되었으며, 1883년에는 통관된 상품에 대해서는 과세가 불가능한 정책이 도입되었습니다.

2.1945년 이후~ 6.25전쟁전까지 대한민국의 무역

일제강점기의 기나긴 암흑기를 지나, 대한민국의 광복 후 1946년 대한민국은 이웃 국가인 중국과 일본에 오징어와 텅스텐 등을 수출함으로써  무역을 재개하였습니다.

2년 후인 1948년에는 수출 규모가 2천 2백만 달러로 성과가 미미하였습니다.

1950년대에 들어와도 광복 직후와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의 수출 성과가 이어졌으며, 미국과 일본 등으로 광물과 수산물을 주로 수출했습니다. 주요 광물로는 텅스텐, 철광석, 흑연이 있었고, 수산물로는 오징어, 한천, 김 등이 주요 수출 품목이었습니다.  광물은  총 수출의 60%~ 80% 와  수산물은  총 수출의 20%에서 30%의 비중을 차지했는데, 광물은 주로 미국으로, 수산물은 주로 일본으로 수출되었습니다.

 

1948년에는 수입의 비중이 수출의 비중보다 훨씬 크게 자리잡았습니다. 2억 8만 달러에 달하는 수입 은 광복 직후 경제 구조의 열악함으로 인해 원조물자가 전체의 73%에서 94%까지 차지하였습니다. 특히 이 원조물자는 대부분이 소비재로 이뤄져 있었고, 이는 국내에서 부족한 소비재를  보충하고 사회를 안정시키기 위한 조치였으나, 궁극적인 경제성장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1950년 초반, 수출을 더욱 성장시키기 위해 수출진흥정책이 시행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전쟁중인 1951년에는 특혜외환제도, 1952년에는 구상무역제도, 전쟁 후인 1954년에는 수출장려 보조금제도가 도입되었고, 1957년에는 경제성장의 밑거리름이 되는 '수출 5개년 계획'이 수립되었습니다. 수입 부문에서는 1949년에 수입쿼터제도, 1953년에는 특별 외화대부제도, 1954년에는 대일 수입규제 조치가 시행되어 무역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3. 성장을 거듭하는 1970년대 무역

1970년대 초 경공업 제품이 전체 수출의 67.9%를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개발도상국들에서는 저렴한 노동력을 활용한 경공업 제품들이 세계시장에 모습을 나타내게 되어, 우리나라는 임금 상승으로 인한 경공업 수출제품의 경쟁력이 세계시장에서 점점 설자리가 위축되게 되는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응하여 1972년부터 1976년까지의 "제 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1977년부터 1981년까지의 "제 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 중화학 공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노력이 이뤄지게 되었습니다.

중화학 공업 육성정책의 일환으로 제철소, 조선소, 석유화학 공장 등이 들어서게었고, 1977년에는 비로소  100억 달러의 수출 성장을 달성했습니다.

 

1970년대에도 1960년대와 마찬가지로 원자재와 자본재가 주요 수입품으로 나타났습니다.

원자재는 전체 수입 비중의 52.9%, 자본재는 23.1%, 그리고 나머지 24%는 소비재로 구성되었습니다.

특히 중화학 공업 육성으로 인해 기계장비가 많이 수입되었는데, 일반설비가 3억 600만 달러, 운반용 설비가 1억 510만 달러, 전자 기기가 1억 330만 달러 수준으로 수입되었습니다.

1971년에 약 24억 달러였던 수입이 1977년에는 100억 달러를 넘어섰고, 1979년에는 200억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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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는 수출을 활성화하고 수입을 관리하는 무역정책이 정착되었습니다. 장기적인 수출계획이 수립되었고, 수출자유지역이 지정되며, 중장기 수출지원제도가 도입되었습니다. 

정부는 수입과 관련하여 수출용 원자재, 시설재, 기계류 등의 수입을 촉진하였지만,  필요가없고, 급하지않은 품목과 사치성 품목에 대해서는 정책적으로 제한을 두었습니다. 또한, 수출입 절차를 간소화하여 무역거래가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였습니다.

 

4. 선진국 문턱에 진입하는 1980년대 무역

1980년대,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 높은 성장을 이루며 무역 분야에서도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의 대한민국 무역은 여러 중요한 특징을 갖추었습니다.

 

1) 수출 다양화: 1980년대에는 주요 경공업 제품 뿐만 아니라 전자제품, 자동차, 섬유 등의 다양한 산업에서 제조된 제품들이 급증하여 수출 다양성이 확대되었습니다. 특히 전자산업에서의 성공은 한국을 세계적인 기술 수출국으로 만들었습니다.

 

2) 글로벌 기업 등장: 대한민국의 기업들이 국제시장에서 강세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삼성, 현대, LG 등의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국제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3) 자동차 및 전자제품 수출 증가: 자동차 산업과 전자제품 산업이 두드러지게 성장하였습니다. 특히 자동차 수출은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노력으로 급증하였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자동차 브랜드로 성장했습니다.

 

4) 무역 흑자 달성: 1986년, 대한민국은 무역 흑자를 달성했습니다. 이는 수출이 수입을 초과하는 상황으로, 국가의 경제적 안정과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5) 정부의 무역 정책 강화: 대한민국 정부는 무역을 촉진하고 수출을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수출지원금, 수출보험, 수출신용보험 등이 이에 포함되었습니다.

1980년대의 무역 성과는 대한민국이 급속한 산업화와 경제 성장을 이루며 국제 무역에서 강국으로의 발전을 거두었음을 나타내는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또한,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는 한국이 경제적으로 선진국 문턱에 진입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외국 언론은 한국을 타이완, 홍콩, 싱가포르와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렀습니다.

 

5 .괄목할 만한 성장과 경제위기의 1990년대 

1990년대에는 대한민국이 반도체, 자동차, 선박, 화학제품, 기계류 등 다양한 산업에서 주력하여 수출 품목을 다양화했습니다.

1992년에는 처음으로 국내에서 생산된 휴대폰을 다른 나라에 판매하며 국제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었고, 1994년에는 반도체 수출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룩했습니다. 또한, 영상기기, 컴퓨터, 자동차 등이 계속해서 수출 상위 품목으로 등장했습니다.

 

1990년대에는 국내에서 소비되는 제품 중 많은 부분이 국내에서 생산되어 수입이 줄었습니다. 주로 수입되는 원자재는 원유와 석유 등이었으며, 자본재는 반도체, 반도체 제조용 장비, 그리고 기타 기계류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1995년에는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여 관세와 비관세 장벽을 완화하여 국제 무역에 참여했습니다. 이로써 국내 무역 규제가 국제 기준에 맞춰졌습니다.

 

한국은 자본과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대기업이 주도하는 수출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가졌습니다. 그 결과, 대기업이 성장하고 수출과 수입에 크게 의존하는 경제 구조가 형성되었습니다.

 

이로인해 1996년 12월, 한국은 세계 29번째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습니다. 이는 아시아의 중요성을 넘어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나라로의 발전을 의미합니다.

 

1997년 11월에는 대한민국이 국제통화기금(IMF)에 금융지원을 요청하여 외환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그러나 과감한 부실 기업 정리와 구조조정을 통해 2년 만에 경제를 회복시키며 국제사회로부터 호평을 받았습니다.

국민 350만 명이 자발적으로 외채를 상환하기 위해 227t의 금을 기부한 일은 전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외환 위기 극복 과정에서 국제화된 경제·금융제도를 도입하면서 부가적인 효과도 나타났지만, 동시에 정부의 재정 지출 증가와 소득 불균형이 더욱 부각되는 등 일부 문제도 발생했습니다.

 

6. 전세계에 위상을 떨치는 2000년대~ 현재까지 무역

한국 경제는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건실한 성장을 이어 나갔습니다.

 

2000년대에 주목할 점은 우리나라의 수출액이 수입액을 넘어선 것입니다.

2000년에 수입액이 1,605 달러였던 반면, 수출액은 1,723 달러로 많았습니다.

시기부터는 고부가가치 정보기술 산업이 주력 산업으로 부상하게 되었습니다. 주요 수출품목으로는 반도체뿐만 아니라 디스플레이, LCD, 휴대폰 등이 등장하여 판매되었습니다. 현재로서는 반도체, 자동차, 휴대폰이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 상품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국내총생산(GDP) 2001 5,046 달러에서 2019년에는 놀라운 증가로 1 6,463 달러로 세계 12위의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경제 위기를 제외하고 매년 4~5% 높은 성장률을 유지하며, 2008, 2009, 그리고 2010 세계 경제 위기 중에도 놀라운 6.3% 경제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이러한 성과로 인해 국제적으로도 한국은 위기극복의 모범 사례로 평가되었습니다.

 

200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주요 수입품목은 여전히 원자재 위주로 원유, 석탄, 그리고 천연가스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특히 2000년대에는 환경 보호를 고려하여 천연가스가 수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2000년대에는 국가 자유무역을 목적으로 한국도 FTA 체결에 적극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칠레를 시작으로 싱가포르, EFTA, ASEAN, 인도, EU, 페루, 미국, 터키, 호주, 캐나다, 중국, 뉴질랜드, 베트남, 콜롬비아 등과 FTA 체결하여 국제 무역에서 활발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한국은 2010년에는 세계 7 수출국으로 도약하며, 2011년부터 2014년까지 4 연속으로 무역에서 1 달러 이상의 성과를 달성했습니다. 2015년과 2016년에는 일시적인 주춤이 있었지만, 2017년에는 1 달러 수준을 회복했습니다. 2019 기준으로 한국은 4,088 달러의 외환을 보유하고 있으며, 단기 외채 비율은 G20 가운데 중간 수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에서는 한국의 이러한 경제적 성과를 높이 평가하며, 신용등급은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 경제가 안정적이고 강건한 성장을 이룩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2020년대인 현재에는 중화학, 경공업, 조선업, 광물, 원부자재등의 수출 뿐만아니라. 대한 민국 석학들과, 젊은 인재들의 노력으로 , 대한민국의 전통문화, 대중문화 등 여러분야로의 수출을 이루어내어 대한민국의 문화적, 경제적 위상을 전세계에 널리알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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